본문 바로가기

▼ 일상/이슈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 4월 11일

반응형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이 올해(2019년)부터 4월 11일로 변경되었습니다. 3.1운동을 기해 민족의 희망을 찾은 지도자들과 독립운동가들이 추진하여 중국 상하이에 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시작된 역사적인 기념일로, 2018년까지는 4월 13일이었습니다. 





왜 바뀌었을까?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의 시작은 1989년 12월입니다. 이때 정부에선 1969년에 발간된 '일제치하 36년사'라는 책을 토대로 '4월 13일'을 기념일로 제정했습니다. '일제치하 36년사'는 '한일관계사료집(1919)' '조선민족운동연감(1932)를 자료로 하여 쓰여졌다고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른 자료들을 검토한 결과, 출범은 13일이 맞지만 발포(공표)는 4월 11일이 맞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한국국민당 기관지 '한민'에서는 "4월 11일이 임시헌장을 발포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성립한 기념일" / 독립운동가 김병조의 '독립운동사략'과 상하이신문 '시사산보'에서는 11일을 수립일로 언급하였습니다.





많은 자료를 토대로 현재까지 정립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1919년 3.1 운동을 토대로 민족 단결과 광복의 희망을 얻은 민족투사들과 독립운동가들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임시정부 수립'을 모색합니다. 이때 이동녕, 신규식, 조소앙, 여운형 등이 중심으로 각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 대표자 29명이 중국 상하이에 모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임시정부를 수립할 것인가." 이 날이 4월 11일입니다. 




당시 국무총리(이승만)을 수반으로 6부의 국무원을 구성,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민주공화제를 추구하는 임시헌장 10개조를 제정/공포 합니다. 하지만 독립운동가들이 여러 나라에 퍼져있던만큼 임시정부의 숫자도 여려 개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성(경성)정부의 법통을 계승, 연해주의 대한국민회의는 통합, 위치는 상하이로 합의를 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통합된 진짜 정부가 수립됩니다. 




그 이후에 '독립신문'을 발행하여 독립운동 소식을 전하고, 서구를 중심으로 외교활동을 펼치게 됩니다. 그중 슬픈 일화가 있습니다. 며칠이 지나지 않은 같은 해 4월, 파리에 있던 신한청년당 김규식에게 파리주재위원부 대표라는 직함을 줍니다. 그때 파리에선 세계1차대전 종료 후 전후 문제 처리를 위한 '파리강화회의'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김규식에게 '일본의 부당한 지배를 열강에 알려라!'는 임무를 줍니다. 하지만 결국 냉대 받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관련 내용을 찾아보면 '지각을 해서 회의에 참여조차 못했다'는 의견과 '승전국인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그 어느나라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정확히 어떠한 사유로 실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공과 실패를 떠나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세계 각지에서 독립투사들이 활동했다는 점은 기억해야 합니다. 

반응형